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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내가 너희들 집을 가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안면도 국제 꽃 박람회를 거쳐 부천 큰아들 있는 데를 한바퀴 둘러보고 싶다.“  

 “예, 아버님, 그러세요.”시아버님께로부터 온 전화 내용을 남편이 전해준다.

 

 최근에 계속 바쁘게 살아온 우리에게 아버님의 나들이는 부모님과 계절과 행사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 준다. 전화를 받고 나는 오랜만에 장을 보았다. 푸른 두릅 순을 사서 데치고, 생선을 사서 튀기고 약하신 치아를 생각해서 두부를 넣고 찌게를 했다.

 

  아버님의 나들이는, 우리가 사는 군산에 1년에 두 번 정도이신데 꼭 테마있는 전화를 주신다.   지난 겨울에는 어떠했던가?   “애야! 내가 눈이 내리면 기차를 타고 너희 집에 갈란다. 일제시대 읽었던 소설속의 풍경들을 더듬어 보고싶다.” 경남 사천에 사시는 74세의 약방집 할아버지는 평소에 사극이나 방경리의 토지를 좋아하시는 분이다.   아버님이 도착하시자 우리는 아이들과 큰절을 드렸다. 모처럼 뵙는 할아버지는 늘 손주손녀에게 긍정적인 표현으로 격려하신다.

 “오 우리 요한이 키 많이 컷구나! 은별이는 정말 더 이뻐졌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우리는 미뤄도 될 일들을 미루고 하루 시간을 내어 안면도를 향했다. 나도 꽃을 좋아할뿐더러 안면도의 소나무 숲이라든지 바닷가의 정경들을 그동안 신문에서만 보았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오시지 그랬어요?”  “네 어머니는 애비 생일 때 오겠단다.” 매사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각은 다르시다. 요즘 젊은이들 같았으면 이혼을 했어도 몇 번을 했을 의견차이가 크신 그분들의 나들이는 각자 따로이시다. “

 

  이번 꽃 박람회가 국제적인 행사라서 얼마나 다양한 꽃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평소에도 나는 가끔 꽃 몇 천원씩을 사는데 그게 돈으로는 비교할 수 없이 정서 순화에 좋더라구나 ” 꽃을 사랑하시고 꽃의 정서를 아시는 아버님이시다. 그분은 조상들의 산소 둘레에도 갖가지 꽃들을 심어 놓으셨다. 개나리, 진달래, 백일홍, 국화, 장미, 여름엔 봉숭아, 가을엔 코스모스 언덕이 되도록 ......오랜만에 고향에 오는 자녀들이 조상들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과 꽃들을 보고 감을 따며 밤을 주으면서 풍부한 정서를 갖고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시원히 뚫린 덕분에 약 2시간만에 안면도에 이르게 되었다. 과연 안면도 입구부터는 산뜻하고 예쁜 꽃들이 가꾸어져 있고 목적지에 이르자 소나무 숲과 바닷가 풍경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웠다. 박람회의 첫날인데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팜플렛을 보며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제철이 아닌 꽃들까지 인공재배되어 꽃과 사람들의 축제이다. 행사장 중간에 심겨진 보리와 밀밭의 파도치는 초록빛 물결도 신선하고 몇 년 또는 수십년을 정성들여 가꾼 정시중의 분재들도 탐날 만큼 멋진 것들이 많았다. 야생화라든지, 수면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들, 또 외국에서 들어온 특색있는 식물들을 보면서, 인간을 위해 지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꽃으로 만든 동물모양의 조형물들도 재미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애인은 오늘 제가 되어야겠네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폼을 잡고 말한다. “잘 찍어주세요.” 남편은 셔터를 누르며 웃는다. 어린아이들처럼 부자간에도 꽃동산 앞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꽃길을 따라가며 어릴 때는 자기 아이들을 부모님 앞에서는 예뻐하지도, 안아주지도 못했던 유교적 관습에 젖어 엄부의 역할만 했던 자신이 정말 옳지 못했음을 말씀하신다. 결혼마저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라고 군에서 휴가 나올 동안에 하셨다는 이이기. 돈이 없어 구두를 사지 못해 고모부의 구두를 빌려 신고 결혼식을 하셨다가 절을 하고 나오면서 신발을 못 찾아 한참 해맸다는 이야기 이런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때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하셨음을 아직도 미안해 하신다.  

 

  시간이 많았더라면 안면도 곳곳을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우리의 할 일 때문에 아버님이 큰댁에 가실 수 있도록 홍성에서 차를 연결해 드리고 돌아왔다. 이렇게 만 하루정도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이지만 부자간에는 더 신뢰와 사랑이 깊어지고 며느리인 나도 평소에 못한 효도를 한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 졌다. 올해도 어버이날에 우리는 시댁이나 친정 모두 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아침에 전화만 드리는 데도 아버님은 반가운 목소리시다.  “ 그날 안면도 꽃구경, 너희들 덕분에 정말 즐거웠다. 너희들도 힘들 텐데 용돈을 또 부쳤더구나, 네 어머니랑 나눠서 잘 쓰겠다. 고맙다 얘야!”올 봄에 아버님의 나들이는 안면도의 꽃을 보신 것 만큼이나 감동이 있는 나들이가 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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